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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대 마애불입상

경주 용문사&백운대마애불입상(百雲臺磨崖佛立像)※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명계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불상.높이 4.55m. 198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불상 주위를 감실(龕室) 형태로 파내고 그 윤곽을 나타내었지만 얼굴과 왼손만 완성했을 뿐 나머지는 미완성이다.이 마애불이 완성되었다면 감산사(甘山寺) 아미타불입상(719년)과 같은 계열의 우드야나식(Udyāna式, 優塡王像式) 여래입상이었겠지만 무표정한 얼굴과 살찐 신체는 통일신라시대의 후기양식을 보여준다.머리는 민머리[素髮]이고 육계는 지나치게 커서 부자연스럽다. 방형의 얼굴은 살찐 모습이며 입을 꼭 다물고 눈꼬리가 날카로운 두 눈은 반쯤 뜬 형태여서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귀도 크고 육중하며, 목의 삼도(三道)는 원반을 포갠 듯 높고..

카테고리 없음 2025.05.16

경주 노서동 석불입상(남항사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호(1985. 08.05)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 노서동 석조불상은 신라 7-8세기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현재 높이는 약 110㎝이며, 최근에 만든 별도의 방형 대좌에 발목아래부분을 끼워서 세워두었다. 석불입상은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여 세부표현이 잘 확인되지 않는데, 특히 얼굴 전체가 결실되어 상호는 전혀 알아볼 수 없고, 광배 역시 어깨 위쪽일부분만 남아 있어 전체의 모습은 명확히 알 수 없다. 또한 불상의 전면과 측면 일부분에서 불에 탄 듯 검게 그을린 자국이 확인되는데, 실제 화재로 인한 흔적인지 석재의 부식 흔적인지는 보존 과학적인 추가 조사가 있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불상은 다리 아랫부분이 땅에 묻혀 있으며 얼굴은 파손되어 모양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광..

카테고리 없음 2025.05.14

경주 남산 배리 윤을곡 마애석불좌상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의 여러 계곡 가운데 하나인 윤을곡(潤乙谷)의 ㄱ자형 바위벽에 새긴 불상이다. 동남향한 바위면에 2구, 서남향한 바위면에 1구를 새겨 삼존불(三尊佛)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그 배치가 매우 특이하다.중앙의 불상은 연꽃 대좌(臺座) 위에서 앉아 있다. 정수리 부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유난히 높고 크며, 얼굴은 긴 타원형을 이룬다. 턱은 각진 것처럼 표현하여 다소 완강한 느낌을 주지만, 눈을 가늘게 뜨고 입에는 미소를 띠고 있어 대체로 부드러운 인상이다. 오른손은 마멸이 심해 확실하지는 않지만 손바닥을 보이며 손끝을 위로 향하고 있고, 왼손은 내려 무릎에 걸쳐 손끝이 땅을 향하도록 하고 있다.오른쪽 불상은 본존불보다 조금 작고 위축된 느낌이 든다. 양감있는 얼굴은 부드러운 느낌..

카테고리 없음 2025.05.13

황오동 삼층석탑

원래 배반동의 장골 사자사(師子寺) 터에 무너진 채로 있던 것을 1936년 경주역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그 기념으로 옮겨와 복원하였다.2층 바닥돌에 3층으로 몸돌을 올린 신라의 일반적인 석탑 형태이다. 바닥돌 위에 몸돌받침 없이 곧바로 몸돌을 올렸다. 1층 몸돌은 폭에 비해 높이가 높고, 2·3층 몸돌은 폭은 거의 줄지 않은 채 높이만 급격히 줄어 전체적으로 날렵한 형태를 띠고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 받침돌 위에 그릇모양의 타원형 장식(覆鉢)*을 만들어 올렸다.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석탑양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탑으로 평가된다.

카테고리 없음 2025.05.13

경주 안강 단계서당

단계서당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가 순절한 권복흥의 사당으로 조선 영조 15년(1739)에 건립되었다. 조선 고종 5년(1868) 때 훼철된 후 1924년에 다시 단을 설치하고 복향하였다.단계서당은 강당인 숭의당을 중심으로 하여 부속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 중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강당은 홑처마 굴도리 3량집으로 좌우에 방을 배치하고 중간에 3칸의 대청이 만들어져 있다. 정면에는 단계사, 대청 뒷벽에는 숭의당 현판이 각각 걸려있다. 특히 강당의 좌우 협칸 전면 상부의 기둥 사이에 도리방향으로 설치된 들보 등은 전통목구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권복흥은 경주시 강동면 다산리 출신으로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각지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부산 다대포에서 전사하였다. 이곳..

카테고리 없음 2025.05.11

경주 남산 부처골 2사지

부처골 입구 사지를 지나 玉龍魔이 있는 남쪽을 향해 가다보면 민가 뒤편으로 오솔길이 나있다이 길을 따라 약 500m 정도 오르면 보물 제198호인 감실 부처가 있다 이 감실 부처로 인해 오늘날 이 계곡을 부처골’혹은 불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불상이 있는 곳을 건물지 1이라 하며, 그 주변에서 확인된 축대 등을 포함해 건물지 2라 하였다.부처가 마치 위쪽에 숨어있듯,가던 오솔길도 보이지 않는 지짐에 오르면 곧 다시 나타난다해맞이마을에서 불곡으로 가는 오른편 능선 사이에는 평지가 있다. 이곳에서 신라시대 와편이 수습되어 사지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는 전부 밭으로 사용되고, 다른 유구나 유물을 찾아보기 어려우나, 예전에 탑재가 있었다 한다. 사역의 전체적인 범위는 90 × 60m 정도이다

카테고리 없음 2025.05.07

경주 안강 흥덕왕릉

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 재위 826∼836)의 무덤으로 무덤제도가 잘 갖추어진 왕릉이다.흥덕왕의 본명은 김수종金秀宗(경휘景徽)이며, 제41대 헌덕왕의 아우이다. 장보고로 하여금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서해를 방어하게 하였고, 당으로부터 가져온 차(茶) 종자를 지리산에 심어 재배하도록 하였다.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20.8m, 높이 6m이다.비교적 커다란 둥근 봉토분으로 무덤 밑에는 둘레돌을 배치하여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둘레돌은 먼저 바닥에 기단 역할을 하는 돌을 1단 깔고 그 위에 넓적한 면석을 세웠다. 면석 사이에는 기둥 역할을 하는 탱석을 끼워 넣었는데, 각 탱석에는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조각하였다. 탱석과 면석 위에는 다시 갑석을 올려 마무리 하였다.무덤의 주위 4모서리에는..

카테고리 없음 2025.05.05

경주 경덕사(景德祠)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塔洞)에 있는 신라개국원훈(新羅開國元勳)을 모신 사당. 배문(裵門)의 시조이자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인 배지타와 중시조인 고려개국원훈 태사 무열공(太師 武烈公) 배현경(裵玄慶)을 안치하고 있으며, 후손들이 정성을 모아 1995년 새로 건립하였다.원래 명활산(明活山) 아래에 유허비각(遺墟碑閣)이 있었으나, 문화재정리사업으로 1984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이후 다시 사묘(祠廟)로 개작하여 배지타를 중심위패로 모시고 배현경을 함께 배향하였다. 사당은 경내를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 상단 중앙에는 사당인 경덕사(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를 배치하고, 내삼문인 경의문(敬義門)과 낮은 담으로 상하를 구분하였다. 하단에는 왼쪽에 재실인 한존재(閑存齋), 오른쪽에는 단칸의 유허비..

카테고리 없음 2025.05.04

경주 율동 마애여래삼존입상

慶州 栗洞 磨崖如來三尊立像. 현 경상북도 경주시 율동 벽도산의 서쪽 바위에 삼존불(三尊佛)을 새긴 8세기 경 통일신라 시대의 마애여래삼존입상. 현재 '경북 경주시 두대안길 69 (율동)'에 소재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다.본존불 높이 3.32m.좌협시보살상 높이 2.45m.우협시보살상 높이 2.22m.경주 벽도산(碧桃山)에 위치하고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마애상으로, 당시 신라인들이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아미타삼존불을 새긴 것이다. 주변의 흔적을 보아 원래는 불상의 앞에 아름다운 목조 전실(前室)을 조영(造營)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파괴되어 사라지고 없다. 이 삼존불들은 8세기에 대한민국으로 급격히 진출하였던 아미타불(阿彌陀佛)의 하나로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

카테고리 없음 2025.05.02

경주 법흥왕릉

신라 23대 왕인 법흥왕(재위 514∼540)의 무덤이다.법흥왕은 신라를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체제로 완성시킨 왕이다. 왕권강화를 위해 상대등과 병부를 설치하였고, 520년 율령을 반포하였다. 532년 금관가야와 합병하여 낙동강유역에 처음 진출하였다. 신라 처음으로 건원(建元)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중국 양(梁)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527년 이차돈이 순교하면서 불교를 국가종교로 수용하고 고대국가의 이념적 기초를 마련하였다.높이 2m, 지름 14m로 삼국시대 신라 왕의 무덤으로는 작은 편이다. 무덤 아래에는 둘레돌을 받쳤던 자연석이 있다. 법흥왕 이전의 왕 무덤은 평지인 경주 무덤들에 밀집되어 있어 소재파악이 어려우나, 그 이후의 왕 무덤은 구릉이나 교외에 2∼3기씩 따로 자리하고 있으며..

카테고리 없음 2025.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