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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창림사지 쌍귀부

창림사지 귀부(龜趺)는 경주 남산 창림사터에 남아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쌍두귀부로, 두 마리의 거북이가 하나의 비석을 받치도록 조각된 이색적인 모습이 특징이며, 비석 몸돌(비신)은 파손되었지만 당대 명필 김생의 글씨가 새겨졌던 것으로 전해져 신라 3대 귀부 중 하나로 꼽힙니다. 현재는 귀부의 머리가 떨어져 나가고 없지만, 창림사지 삼층석탑과 함께 발굴되어 신라의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물입니다. 두 마리의 거북이가 큰 비석을 지고 있는 '쌍두귀부(雙頭龜趺)' 형태로, 일반적인 단일 거북이 귀부와 차별화됩니다.신라 초기 박혁거세의 궁궐터에 세워졌던 창림사라는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깊으며, 중요한 비석의 받침이었음을 보여줍니다.거북이의 머리 부분과 비신(비석 몸돌)은 유실되었으나, 대좌(받침돌)와 거북이..

카테고리 없음 2026.01.16

경주 남산 창림사지삼층석탑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는 창림사지는 발굴조사를 통하여 경주 불국사 등 통일신라시대 가람에서 나타나는 층(공간)별 독립된 공간이 창림사에서 확인된 바 있으며 확장과정에서 새로 추가된 영역에 팔부신중을 조각한 석탑, 즉 삼층석탑이 조성 됐다는 점 등을 확인할 수 있다.탑의 조성시기는 창림사지에 있는 세 개의 석탑 중 하나의 석탑의 사리공 속에서 발견된 《무구정탑원기》를 통해 신라 문성왕(855년 경)때로 추정하고 있다.석탑은 2중기단을 조성한 후 3개층 탑신부를 얹은 전형적인 신라 3층석탑의 모습이다. 기단부의 구성은 상, 하 2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부는 통돌에 하대면석과 지석으로 구분하여 치석하였고 면석에 각 돌마다 3개의 탱주를 두었다. 탱주의 개수는 석탑 변천의 가장 가시적인 지표로 통일신라 초기(..

카테고리 없음 2026.01.13

경주 백운대 마애불입상

백운대 마애불입상(白雲臺磨崖佛立像)은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마석산 암벽에 새겨진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거대한 미완성 마애불로, 높이 약 4.6m이며, 얼굴과 왼손 일부만 완성된 채 조각되어 있어 제작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입니다. 얼굴과 상투 모양의 육계, 길게 늘어진 귀는 정교하게 표현되었으나, 신체와 옷주름은 윤곽만 남고 미완성 상태로, 신라시대 석조 불상 제작 기법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습니다.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옛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6호).경북 경주시 내남면 명계리 마석산 암벽.불상 높이 약 4.6m, 거대한 화강암 바위에 새겨짐.얼굴과 왼손 일부만 완성, 나머지는 미완성.통일신라시대 후기.신라 후기 불상의 양식과 미완성 상태의 제작 기법을 보여주는 희소성 있는 사례. ..

카테고리 없음 2026.01.11

경주 배동 망월사

망월사는 경주시 배동에 자리한 대한 불교 원효종 사찰이며 원효종의 중요한 사찰로 꼽힌다. 대한불교원효종은 우리나라 18개 불교 종단 가운데 하나로 신라의 원효스님을 종조로 하여 1963년 경주에서 해인스님이 대한불교원효종 포교원을 창종하고 해인스님이 초대 종정이 되었다. 그 뒤 1967년 8월 망월사가 본원이 되었으며, 1977년 12월 대한불교원효종이 되었다. 현재 총무원은 서울 안양암에 있고, 주요 경전은 인데 1967년 망월사에서 발간되었다. 오랜 역사와 위상에 비해 소박한 사찰이며 대웅전, 요사채가 있으며 연못 안에 놓인 불탑인 연화탑이 인상적이다.인근에는 삼불사와 배동삼존여래입상이 있다. 지금은 폐사된 옛 신라시대 사찰 선방사지에 있는 망월사와 삼불사, 배동삼존여래입상 세곳을 선방골이라 부른다.

카테고리 없음 2026.01.08

경주 신라 제8대왕 아달라 이사금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의 장남이다. 키가 7척이며 코가 매우 커 외모가 특별하였다. 어머니 박씨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이다. 왕비 박씨 내례부인(內禮夫人)은 지마왕(祇摩王)의 딸이다.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 생몰년은 미상~184년이며, 154∼184년까지 재위한 신라 제8대 왕이다. 본명은 박아달라(朴阿達羅)로 되어있지만, 당시 성이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왕호는 이사금이다. 가족 관계를 보면 아버지는 전왕인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이며, 어머니 박씨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이라 하였다. 배우자는 내례부인(內禮夫人) 박씨이다. 내례부인은 6대 왕인 지마이사금(祗摩尼師今)의 딸로, 계보상 아달라이사금의 5촌 조카이다.아달라이사금은 신라 상대 마지막 박씨..

카테고리 없음 2026.01.05

경주 일성왕르

신라 7대 일성왕(재위 134∼154)의 무덤이다.왕은 북쪽 변방에 침입하는 말갈인을 막고, 농토를 넓혀 제방을 쌓는 등 농업을 권장했으며, 백성들에게 금·은·보석의 사용을 금지하여 사치풍조를 멀리하게 했다.왕릉은 높이 5.3m, 지름 15m의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둘레돌을 둘렀으며, 내부는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이다. 무덤 앞 2단 축대는 경내를 보호하기 위해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이 왕릉은 1960년도 정비 과정에서 석실분으로 밝혀졌는데, 석실분은 6세기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진짜 일성 이사금의 능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신라왕릉 문서에도 있듯 고고학적 지식이 부족하던 조선 시대에 비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무덤의 주인을 경애왕(제55대)이나..

카테고리 없음 2026.01.03

경주 삼랑사지 당간지주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삼랑사터에 남아 있는 이 당간지주는 서로 멀리 떨어져 세워져 있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만 원래의 자리에 남아있는 듯하다. 마주 보는 면의 바깥 면에 세로줄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겼고, 꼭대기는 바깥쪽으로 곡선을 그리며 둥글게 내려가다가 한 단의 굴곡을 이루어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중앙부분만 파여져 전체적으로 가늘어져 있다. 지주 안쪽 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홈을 아래위 두 군데에 파놓았다.각 변의 길이가 적당하고, 높이와도 잘 조화되어 통일신라의 양식을 잘 따르고 있으면서도 중앙부분의 두께를 얇게 하는 등 ..

카테고리 없음 2026.01.01

경주 지마왕릉

이 능은 신라 제6대 지마왕(112~134 재위)이 묻힌 곳으로 알려져 있다. 파사왕(婆娑王)의 맏아들로 왕위를 이었다. 지마왕의 재위 기간에 신라는 백제와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으나 가야와는 낙동강 하류를 둘러싸고 패권을 다투었다. 왜인(倭人)들이 동쪽 변경(邊境)을 침범하였으나 교섭하여 강화를 맺었고, 북쪽에서 말갈(靺鞨)이 쳐들어오자 백제의 도움을 받아 물리쳤다. 무덤은 포석정에서 남쪽으로 200m쯤 떨어진 남산의 서쪽 자락에 있다. 왕릉 중에는 작은 편에 속한다. 발굴조사는 하지 않았으나 외형과 입지로 보아 내부 구조는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일 가능성이 있다.

카테고리 없음 2025.12.31

경주 동천동 탈해왕릉

신라의 4대 왕은 탈해 이사금(脫解尼師今)으로, 석씨(昔氏) 성을 가진 왕이며, 재위 기간은 기원후 57년 ~ 80년까지입니다. 그는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와 함께 인도 다파나국(多婆那國) 또는 용성국(龍城國) 출신이라는 설이 있으며, 신라의 기틀을 다지고 영토를 확장하는 데 기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큰 알에서 태어나 6부 촌장(육촌)의 도움으로 신라의 왕이 되었다는 신화가 전해집니다박씨 왕조의 1~3대 왕 이후, 석씨 성을 가진 첫 번째 왕으로, 신라 왕권의 성씨 변화를 보여줍니다. 주변국인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을 정벌하여 신라에 편입시켰으며, 신라의 영토 확장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경주 동천동에 그의 무덤인 탈해왕릉이 있습니다. #경주시 #유적건조물 #삼국사기#탈해왕릉 #금관국 #진한..

카테고리 없음 2025.12.30

경주 동천동 숭신전

신라 3대 왕의 성 가운데 최초의 석씨 왕인 탈해왕(57∼80)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전설이 전한다. 왜국 동북쪽 멀리 떨어져 있는 타파나국 왕비가 잉태한지 7년만에 커다란 알 하나를 낳았다. 그런데 알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궤짝에 넣어 바다로 띄어 보냈고 이 궤짝이 신라 땅에 가서 닿았다. 한 노인이 궤를 발견하고 열어보니 어린아이가 있어 데려다 키웠는데, 건질 때 까치들이 울며 따라 왔으므로 까치 ‘작(鵲)’자에서 ‘조(鳥)’자를 떼어내고 ‘석(昔)’으로 성을 삼았다. 이름은 궤를 풀고 나와 탈해라 지었다고 한다.숭신전은 본전 3칸·전사청 2칸·상의재 4칸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카테고리 없음 2025.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