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16

경주 안강 삼괴정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경주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동호東湖 이방린李芳隣, 1574~1624과 동생 유린有隣, 광린光隣 삼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조선 순조(純祖) 15년1815에 세운 정자이다.이방린은 임진왜란 때 경주판관慶州判官 박의장朴毅長, 의병장 권응수(權應銖)등과 함께 영천성永川城전투에 참가하였고,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사용해 경주성 회복의 공을 세웠다. 그리고 경주의 계연鷄淵전투에도 공을 세워 안동대도호부판관 겸부사安東大都護府判官 兼 府使를 지냈다.가운데에 3칸 마루를 깔고 양 옆에 온돌방을 두었으며, 가운데칸 뒤쪽 필경재必敬齋는 이방린을, 왼쪽의 화수당花樹堂과 오른쪽의 포죽헌苞竹軒은 두 동생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 한다. 뒷산을 배경으로 정남쪽을 향하도록 터를 잡았다. 땅 모양에 순응..

경주 안강리 석조여래좌상

이 불상은 안강읍 안강리에 있는안강청소년문화의집 야외정원에 있는 불상이다. 「경주지역 북부지역지표조사보고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1997」에 의하면, ‘이 불상은 하곡리 석불좌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 조암사지에 있던 것으로 하곡리 하강초등학교로 옮겨졌다가 안강읍사무소를 거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이 불상은 원래 광배와 불신을 한 장 돌로 조각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머리 윗부분은 사라져버리고 남은 것도 그나마 세 조각으로 깨어져있다. 어깨를 드러내는 편단우견의 대의를 걸치고 있다. 오른손은 무릎위에 올리고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렸다. 왜소한 체구, 도식화된 옷주름 등으로 미뤄 통일신라 9세기 후반에 조성된 석불로 여겨진다. 불신은 높이 69㎝, 어깨폭 44㎝, 무릎 폭 84㎝이다’라고 밝..

카테고리 없음 2025.05.18

경주 노서동 석불입상(남항사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호(1985. 08.05)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 노서동 석조불상은 신라 7-8세기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현재 높이는 약 110㎝이며, 최근에 만든 별도의 방형 대좌에 발목아래부분을 끼워서 세워두었다. 석불입상은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여 세부표현이 잘 확인되지 않는데, 특히 얼굴 전체가 결실되어 상호는 전혀 알아볼 수 없고, 광배 역시 어깨 위쪽일부분만 남아 있어 전체의 모습은 명확히 알 수 없다. 또한 불상의 전면과 측면 일부분에서 불에 탄 듯 검게 그을린 자국이 확인되는데, 실제 화재로 인한 흔적인지 석재의 부식 흔적인지는 보존 과학적인 추가 조사가 있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불상은 다리 아랫부분이 땅에 묻혀 있으며 얼굴은 파손되어 모양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광..

카테고리 없음 2025.05.14

경주 남산 배리 윤을곡 마애석불좌상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의 여러 계곡 가운데 하나인 윤을곡(潤乙谷)의 ㄱ자형 바위벽에 새긴 불상이다. 동남향한 바위면에 2구, 서남향한 바위면에 1구를 새겨 삼존불(三尊佛)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그 배치가 매우 특이하다.중앙의 불상은 연꽃 대좌(臺座) 위에서 앉아 있다. 정수리 부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유난히 높고 크며, 얼굴은 긴 타원형을 이룬다. 턱은 각진 것처럼 표현하여 다소 완강한 느낌을 주지만, 눈을 가늘게 뜨고 입에는 미소를 띠고 있어 대체로 부드러운 인상이다. 오른손은 마멸이 심해 확실하지는 않지만 손바닥을 보이며 손끝을 위로 향하고 있고, 왼손은 내려 무릎에 걸쳐 손끝이 땅을 향하도록 하고 있다.오른쪽 불상은 본존불보다 조금 작고 위축된 느낌이 든다. 양감있는 얼굴은 부드러운 느낌..

카테고리 없음 2025.05.13

경주 남산 부처골 2사지

부처골 입구 사지를 지나 玉龍魔이 있는 남쪽을 향해 가다보면 민가 뒤편으로 오솔길이 나있다이 길을 따라 약 500m 정도 오르면 보물 제198호인 감실 부처가 있다 이 감실 부처로 인해 오늘날 이 계곡을 부처골’혹은 불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불상이 있는 곳을 건물지 1이라 하며, 그 주변에서 확인된 축대 등을 포함해 건물지 2라 하였다.부처가 마치 위쪽에 숨어있듯,가던 오솔길도 보이지 않는 지짐에 오르면 곧 다시 나타난다해맞이마을에서 불곡으로 가는 오른편 능선 사이에는 평지가 있다. 이곳에서 신라시대 와편이 수습되어 사지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는 전부 밭으로 사용되고, 다른 유구나 유물을 찾아보기 어려우나, 예전에 탑재가 있었다 한다. 사역의 전체적인 범위는 90 × 60m 정도이다

카테고리 없음 2025.05.07

경주 안강 흥덕왕릉

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 재위 826∼836)의 무덤으로 무덤제도가 잘 갖추어진 왕릉이다.흥덕왕의 본명은 김수종金秀宗(경휘景徽)이며, 제41대 헌덕왕의 아우이다. 장보고로 하여금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서해를 방어하게 하였고, 당으로부터 가져온 차(茶) 종자를 지리산에 심어 재배하도록 하였다.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20.8m, 높이 6m이다.비교적 커다란 둥근 봉토분으로 무덤 밑에는 둘레돌을 배치하여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둘레돌은 먼저 바닥에 기단 역할을 하는 돌을 1단 깔고 그 위에 넓적한 면석을 세웠다. 면석 사이에는 기둥 역할을 하는 탱석을 끼워 넣었는데, 각 탱석에는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조각하였다. 탱석과 면석 위에는 다시 갑석을 올려 마무리 하였다.무덤의 주위 4모서리에는..

카테고리 없음 2025.05.05

경주 경덕사(景德祠)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塔洞)에 있는 신라개국원훈(新羅開國元勳)을 모신 사당. 배문(裵門)의 시조이자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인 배지타와 중시조인 고려개국원훈 태사 무열공(太師 武烈公) 배현경(裵玄慶)을 안치하고 있으며, 후손들이 정성을 모아 1995년 새로 건립하였다.원래 명활산(明活山) 아래에 유허비각(遺墟碑閣)이 있었으나, 문화재정리사업으로 1984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이후 다시 사묘(祠廟)로 개작하여 배지타를 중심위패로 모시고 배현경을 함께 배향하였다. 사당은 경내를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 상단 중앙에는 사당인 경덕사(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를 배치하고, 내삼문인 경의문(敬義門)과 낮은 담으로 상하를 구분하였다. 하단에는 왼쪽에 재실인 한존재(閑存齋), 오른쪽에는 단칸의 유허비..

카테고리 없음 2025.05.04

경주 법흥왕릉

신라 23대 왕인 법흥왕(재위 514∼540)의 무덤이다.법흥왕은 신라를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체제로 완성시킨 왕이다. 왕권강화를 위해 상대등과 병부를 설치하였고, 520년 율령을 반포하였다. 532년 금관가야와 합병하여 낙동강유역에 처음 진출하였다. 신라 처음으로 건원(建元)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중국 양(梁)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527년 이차돈이 순교하면서 불교를 국가종교로 수용하고 고대국가의 이념적 기초를 마련하였다.높이 2m, 지름 14m로 삼국시대 신라 왕의 무덤으로는 작은 편이다. 무덤 아래에는 둘레돌을 받쳤던 자연석이 있다. 법흥왕 이전의 왕 무덤은 평지인 경주 무덤들에 밀집되어 있어 소재파악이 어려우나, 그 이후의 왕 무덤은 구릉이나 교외에 2∼3기씩 따로 자리하고 있으며..

카테고리 없음 2025.04.27

경주 천군동 피막골사지

피막곡사지는 경주시 천군동 1573번지 일대로 후곡산의 남동쪽 구릉 하단부의 피막골에 위치한다.조사대상지역이 있는 피막골은 지형적으로 해발 200m 내외의 야산으로 사면이 둘러져있어 외부와의 교류가 드문 지역으로, 이러한 지명은 임진왜란 때 안동 권씨들이 난을 피해 들어와 살았다고 하여‘피막’, ‘필막’으로 부르고 있다.현재 경주시 종합자원화단지 내로 진입하여 들어가면 웰빙센터 맞은 편 공터에 폐탑재와 기와편들이 있어, 이 일대가 사지일 가능성이 있다.본 사지는‘천군동사지’혹은‘천군동 피막곡사지 폐탑’으로 부른다.하지만 유적이 위치한 지형이 산으로 둘러싸인 폐쇄적인 지형이기 때문에 사찰에 대한 자세한 연혁이나 사찰명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본 사지는 일제강점기인 1931년 오사카 긴타로가 조사하면서 사..

카테고리 없음 2025.04.26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나원리마을의 절터에 남아 있는 석탑으로, 경주에 있는 석탑 가운데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과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과 비교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순백의 빛깔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나원 백탑(白塔)’이라 부르기도 한다.2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기단과 1층 탑신의 몸돌, 1·2층의 지붕돌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각 면마다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는데, 가운데 조각을 아래층은 3개씩, 위층은 2개씩 두었다. 탑신부는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경사면의 네 모서리가 예리하고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고, 밑면에는 5단씩의 ..

카테고리 없음 2025.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