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 8

경주 지마왕릉

이 능은 신라 제6대 지마왕(112~134 재위)이 묻힌 곳으로 알려져 있다. 파사왕(婆娑王)의 맏아들로 왕위를 이었다. 지마왕의 재위 기간에 신라는 백제와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으나 가야와는 낙동강 하류를 둘러싸고 패권을 다투었다. 왜인(倭人)들이 동쪽 변경(邊境)을 침범하였으나 교섭하여 강화를 맺었고, 북쪽에서 말갈(靺鞨)이 쳐들어오자 백제의 도움을 받아 물리쳤다. 무덤은 포석정에서 남쪽으로 200m쯤 떨어진 남산의 서쪽 자락에 있다. 왕릉 중에는 작은 편에 속한다. 발굴조사는 하지 않았으나 외형과 입지로 보아 내부 구조는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일 가능성이 있다.

카테고리 없음 2025.12.31

경주 동천동 탈해왕릉

신라의 4대 왕은 탈해 이사금(脫解尼師今)으로, 석씨(昔氏) 성을 가진 왕이며, 재위 기간은 기원후 57년 ~ 80년까지입니다. 그는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와 함께 인도 다파나국(多婆那國) 또는 용성국(龍城國) 출신이라는 설이 있으며, 신라의 기틀을 다지고 영토를 확장하는 데 기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큰 알에서 태어나 6부 촌장(육촌)의 도움으로 신라의 왕이 되었다는 신화가 전해집니다박씨 왕조의 1~3대 왕 이후, 석씨 성을 가진 첫 번째 왕으로, 신라 왕권의 성씨 변화를 보여줍니다. 주변국인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을 정벌하여 신라에 편입시켰으며, 신라의 영토 확장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경주 동천동에 그의 무덤인 탈해왕릉이 있습니다. #경주시 #유적건조물 #삼국사기#탈해왕릉 #금관국 #진한..

카테고리 없음 2025.12.30

경주 동천동 숭신전

신라 3대 왕의 성 가운데 최초의 석씨 왕인 탈해왕(57∼80)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전설이 전한다. 왜국 동북쪽 멀리 떨어져 있는 타파나국 왕비가 잉태한지 7년만에 커다란 알 하나를 낳았다. 그런데 알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궤짝에 넣어 바다로 띄어 보냈고 이 궤짝이 신라 땅에 가서 닿았다. 한 노인이 궤를 발견하고 열어보니 어린아이가 있어 데려다 키웠는데, 건질 때 까치들이 울며 따라 왔으므로 까치 ‘작(鵲)’자에서 ‘조(鳥)’자를 떼어내고 ‘석(昔)’으로 성을 삼았다. 이름은 궤를 풀고 나와 탈해라 지었다고 한다.숭신전은 본전 3칸·전사청 2칸·상의재 4칸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카테고리 없음 2025.12.27

경주 동천동 표암유허비

경주 동천동 소금강산 기슭아래 굴불사지 사면석불상과백률사,동천동 마애삼존불표암, 표암유허비, 탈해왕릉, 숭신전, 광림대석혈이 분포해 있는데 이번에는 표암 유허비로 가봅니다박바위는 경주이씨시조 알평공 하늘로부터 내려온 곳이다순조4년(1804)에 후손 좌의정 경일(敬一)이 현인을 공경하고 조상을 추모할 곳이라는 내용으로 비문을 짓고 형조판서 집두(集斗)가 쓰고 장령 진택(鎭宅)이 감독하여 이 비를 건립하였다. 원래 표암앞을 흐르던 동천가에 있었으나 홍수의 피해를 입게되어 1879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새웠다박바위박바위'는 주로 신라 건국 설화와 관련 있는 경주 표암(瓢巖)을 가리키며, '밝은 바위'라는 뜻으로 알천 양산촌 시조 이알평이 내려와 세상을 밝게 했다는 전설이 깃든 곳으로, 6촌장들이 모여 화백회..

카테고리 없음 2025.12.24

경주 광림대 석혈

탈해왕릉앞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숭신전 왕릉 표암 광림대를 두루 관람을하는것도 좋을 듯 합니다.광림대에서 경주시내를 바라 보는것도 일품입니다.광림대석혈(光臨臺石穴)은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에 위치한 경주 표암(경상북도 기념물 제54호) 내에 있는 유적입니다. 이 곳은 신라 건국 신화와 관련된 중요한 장소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이알평(李謁平) 탄생 신화: 전설에 따르면, 광림대석혈은 경주 이씨의 시조인 이알평이 하늘에서 내려온 후 몸을 씻은 장소로 전해집니다.신라 화백회의(和白會議) 장소: 신라 시대 중요한 회의 기구인 화백회의가 시작되거나 열렸던 장소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광림대석혈은 표암 유허비(表巖遺墟碑) 및 표암재(表巖齋)와 함께 자리하고 있으며, 인근에 탈해왕릉(脫解王陵)이 ..

카테고리 없음 2025.12.22

경주 오릉

네이버지도]경주 오릉경북 경주시 탑동 67-1 오릉https://naver.me/FU9CKb0o경주시내 평지 서남쪽에 위치한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무덤이다.『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박 씨 임금과 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왕비 등 5명의 무덤이라 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혁거세왕이 임금자리에 있은지 62년 만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7일 후에 몸이 흩어져 땅에 떨어지자 왕비도 따라 죽으니, 사람들이 같이 묻으려고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해서 몸의 다섯 부분을 각각 묻었는데, 그것을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 했다고 한다.내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무덤의 겉모습은 경주시내에 있는 다른 삼국시대 신라무덤과 같이 둥글게 흙을 쌓..

카테고리 없음 2025.12.20

경주 효소왕릉

신라 제32대 효소왕(재위 692∼702) 무덤이다.신문왕(재위 681∼692)의 아들로서 삼국을 통일한 후 안정과 발전이 있던 시기에 왕위에 올라 서시전과 남시전 등 시장을 열어 물품의 유통을 쉽게 하였다.높이 4.3m, 지름 10.3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해 둘레석을 돌렸으나 현재 몇 개만이 남아있다. 무덤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혼령이 머무는 자리라는 혼유석만이 있다.『삼국사기』에 의하면 702년에 왕이 죽자 이름을 효소라 하고 망덕사 동쪽에 장사지냈다고 했으나, 현재 서쪽에 있는 이 무덤은 망덕사지에서 남남동 방향으로 약 8㎞ 거리에 있어 차이가 많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망덕사지 동쪽에 있는 신문왕릉을 효소왕릉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효소왕릉은 성덕..

카테고리 없음 2025.12.07

경주 성덕왕릉귀부

성덕왕릉귀부는 경상북도 경주시 성덕왕릉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귀부로, 성덕왕의 비석을 받쳤던 받침돌입니다. 현재 비석의 비신(몸체)과 이수(머리 부분)는 사라지고 이 거북 모양의 받침돌만 남아 있으며, 섬세하고 힘찬 조각술을 보여주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제96호입니다. 성덕왕릉 앞에 세웠던 비석의 받침대 역할을 했습니다.비석의 몸체와 머리 부분은 모두 없어지고, 거북 모양의 받침돌만 남아 있습니다.거북이 모양으로 만들어졌으며, 머리 부분은 깨져나가고 몸통 부분만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앞발가락은 5개, 뒷발가락은 4개로 표현되었으며, 등에는 직사각형의 비좌와 6각형 등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경주시#성덕왕릉#귀부#거북이#통일신라시대#비신과이수#경상북도유..

카테고리 없음 2025.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