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지도]
경주 오릉
경북 경주시 탑동 67-1 오릉
https://naver.me/FU9CKb0o
경주시내 평지 서남쪽에 위치한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무덤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박 씨 임금과 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왕비 등 5명의 무덤이라 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혁거세왕이 임금자리에 있은지 62년 만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7일 후에 몸이 흩어져 땅에 떨어지자 왕비도 따라 죽으니, 사람들이 같이 묻으려고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해서 몸의 다섯 부분을 각각 묻었는데, 그것을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 했다고 한다.

내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무덤의 겉모습은 경주시내에 있는 다른 삼국시대 신라무덤과 같이 둥글게 흙을 쌓아 올린 원형 봉토무덤으로, 1호 무덤이 높이 10m로 가장 크며, 2호 무덤은 표주박형으로 봉분이 두 개인 2인용 무덤이다. 이러한 대형 원형 봉토무덤은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 등장하는 것으로 박혁거세 당시의 무덤 형식은 아니다.

Ⅰ. 신라 제1대 왕 박혁거세
신라 1대 왕은 건국 시조인 **박혁거세 거서간(赫居世居西干)**이며, 기원전 57년부터 서기 4년까지 재위하며 사로국을 세우고 신라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박 씨의 시조이기도 합니다. 그는 여섯 촌장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라 '거서간'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이름: 박혁거세 (朴赫居世)
칭호: 거서간 (居西干)
재위 기간: 기원전 57년 ~ 서기 4년
주요 업적:
사로국(斯盧國) 건국
BC 37년 금성(金城)에 성을 쌓고 궁궐을 지어 나라의 기틀을 확립
신라 왕실의 시조이자 박 씨의 시조
https://share.google/moHoS6 f5 cToI5 qRc0
박혁거세 I 서라벌, 신라의 시조, 알에서 태어난, 신라, 신라 국왕..
Ⅱ. 신라 제2대 왕
신라의 2대 왕은 **남해왕(南解王)**이며, 초대 왕인 박혁거세왕의 아들로, 신라 건국 이후 왕위를 계승하여 초기 국가 체제를 다지는 데 기여했습니다. 신라 왕조의 시조가 박혁거세왕이고, 그다음이 남해왕이며, 3대 왕이 유리왕입니다.

Ⅲ. 신라 제3대 왕
신라 3대 왕은 **유리이사금**으로,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의 손자이자 남해차차웅의 아들이며, '이사금'이라는 칭호를 처음 사용하고 육부 체제를 정비하여 신라의 기틀을 다진 왕입니다. 그는 이빨 개수로 왕을 정하는 시험을 통해 왕위에 올랐으며, 농기구와 수레를 제작하고 이서국을 정벌하는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주요 정보
이름: 유리 (儒理)
왕호: 이사금 (尼師今)
재위 기간: 24년 ~ 57년
가족: 남해차차웅의 아들, 운제부인의 아들
주요 업적:
왕위 계승: 이빨 개수 시험을 통해 '이사금' 칭호 사용.
국가 기틀 확립: 육부의 이름을 정리하고 성씨를 내려 나라의 체제 정비.
문화 및 기술 발전: 쟁기, 얼음 창고, 수레 제작.
영토 확장: 이서국 정벌.

Ⅳ. 신라 제5대 왕
신라 제5대 왕은 파사 이사금입니다. 재위 기간은 80년~112년이며, 제3대 유리 이사금의 둘째 아들입니다.
대수: 제5대
왕명: 파사 이사금(婆娑尼師今)
재위 기간: 80년~112년 (33년)
출신: 제3대 유리 이사금의 둘째 아들
주요 업적: 외세를 대비하고, 백제 기루왕과 함께 말갈족의 침입을 물리쳤습니다.

Ⅴ. 알영왕비
삼국시대 신라 제1대 혁거세거서간의 왕비.
아리영(娥利英)·아이영(娥伊英)·아영(娥英) 등이라고도 한다. 알영정(閼英井) 가에 용(또는 鷄龍)이 나타나 옆구리에서 여아를 탄생시켰다. 이때 여아의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았는데, 월성북천(北川)에 데리고 가서 목욕시키니 그 부리가 빠졌다. 태어난 우물의 이름을 따서 여아의 이름을 알영이라고 하였다.
설화는 알지(閼智)와 연결되어 닭토템을 가진 토착세력인 김 씨 부족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한다. 한편, 알영설화는 용토템에 가까우며 김 씨 세력과는 연결될 수 없고, 혁거세와 같은 시기에 이주한 집단으로 보는 설도 있다.
알영은 용모와 인품이 뛰어나 혁거세를 보필하는 비가 되었는데, 나라사람들이 이 두 사람을 이성(二聖)이라고 하였다. 그녀가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설화는 석가의 탄생을 연상시켜 불교의 영향으로 인한 후대의 윤색을 인정할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이상으로 오릉에 묻힌 신라왕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