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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성덕왕릉

경주에서 불국사 방향으로 가는 길의 동남쪽 구릉 소나무숲 속에 자리하고 있는 신라 제33대 성덕왕(재위 701∼737)의 무덤이다.성덕왕은 신문왕의 아들로 본명은 융기이다. 당과 적극적인 교류를 하였으며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된 신라의 전성기를 이끌어 나갔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737년에 왕이 죽자 이거사(移車寺) 남쪽에 장사지냈다고 하는데, 현재 왕릉 북쪽에 이거사로 추정되는 절터가 있다.이 능은 밑둘레 46m 높이5m이다.무덤 아래부분에는 둘레돌을 배치하여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였는데, 높이 90㎝ 정도의 돌(면석)을 두르고 그 위에 덮개돌인 갑석을 올렸다. 면석 사이에는 기둥 역할을 하는 탱석을 끼워 고정시켰으며, 그 바깥쪽에 삼각형의 돌을 세워 받치고 있다. 삼각형의 받침돌 사이에 12지신상이 배..

카테고리 없음 2025.11.29

경주 희강왕릉

신라 제43대 희강왕(836∼838)의 무덤이다. 그는 재위기간이 3년밖에 되지 않아 별다른 업적은 보이지 않는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이 죽자 소산에 장사지냈다고 하나 그 지점은 알 수 없다.지름 14m, 높이 3.4m의 이 무덤은 얕은 구릉의 중간 부분에 있으며, 흙을 쌓아 올린 둥근 무덤으로 높이에 비해 아랫부분이 넓은 편이다. 희강왕릉의 무덤이라고만 전해 내려오다가 조선 후기에 희강왕릉으로 지목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무덤은 크기만 클 뿐 일반 백성의 무덤과 비슷하며 특징은 없다.

카테고리 없음 2025.11.26

경주 전민애왕릉

신라 제44대 민애왕(838∼839)의 무덤으로 높이 3.8m, 지름 12.5m이다.여러차례 도굴을 당하였으나 1984년 9월에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무덤과 주변을 발굴조사하여 규모를 밝히고,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하였다.조사결과에 의하면 무덤 밑부분 바깥쪽으로 일정한 간격의 12개의 구멍이 있었다. 구멍에는 곱돌로 만든 12마리 동물의 얼굴에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십이지신상을 하나씩 묻었다. 조사 당시에는 쥐·소·닭·돼지 4개만 발견되었다. 나머지는 무덤의 외부받침석이 만들어질 때 파손되고,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었다.무덤 주변에서 뼈단지가 발견되었는데, 뚜껑에 ‘원화십년(元和十年)’이란 글자가 있어 헌덕왕 7년(815)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뼈단지는 무덤이 만들어진 후에 묻힌 것으로 무덤은 81..

카테고리 없음 2025.11.24

경주 신문왕릉

신라 31대 신문왕(재위 681∼692)의 무덤이다.신문왕은 문무왕의 아들로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한 후 신라 중대 전제왕권을 확고히 하였다. 국립교육기관인 국학을 설립하고, 지방통치를 위해 9주5소경제도를 설치하였고, 고구려·백제·말갈인을 포함시킨 중앙 군사조직인 9서당을 완성하는 등 중앙과 지방의 정치제도를 정비하여 전제왕권을 다졌다.높이 7.6m, 지름 29.3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둘레돌은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5단으로 쌓았고 44개의 삼각형 받침돌이 둘레돌을 튼튼하게 받치고 있다.『삼국사기』에 의하면 낭산(狼山) 동쪽에 신문왕을 장사지냈다고 되어있어, 낭산 동쪽 황복사터 아래쪽 12지신상이 남아있는 무너진 왕릉을 신문왕 무덤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카테고리 없음 2025.11.16

경주 정강왕릉

정강왕은 신라 제50대 왕이다. 릉은 남산 동남록 송림 속에 있다. 봉토 밑에는 삼단의 호석(護石)이 있는데 모두 가공한 장대석으로 축조하였다. 하단은 한층 넓게 쌓고 그 위에 2단의 석축은 밑은 넓고 위는 좁게 쌓았다. 전면에는 1매 석상이 놓이고 그 주위에 얇은 석단이 있으며 조금 떨어져 일렬 장대석이 있다. 정강왕은 경문왕의 둘째 아들이며 다음 해 7월에 훙어하였다. 이 왕릉의 형식은 선왕 헌강왕릉과 같으나 별로 치적(治積)이 없음에도 전왕(前王)과 같은 형식의 왕릉을 만들었음은 태평성세의 여세를 따라 그의 형의 왕릉형식을 따른 듯하다. 보리사 동남에 장사 지냈음도 모두 전왕(前王)의 뒤를 따른 듯하다. * 연혁(유래) 이 능은 경주 남산의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끝 부분에 자리 잡고 있으며, ..

카테고리 없음 2025.11.12

포항 법광사지 삼층석탑

법광사지 삼층석탑은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이다. 이중 기단에 삼층 탑신을 올린 양식으로, 탑신 맨 아래 층의 받침이 굽형 괴임**** 형식으로 변화했다는 점에서 통일신라 석탑 양식이 발달하는 흐름을 보여준다.조탑경이 확인된 석탑들 중에서 『불정존승다라니경佛頂尊勝陀羅尼經』을 조탑경으로 삼은 유일한 석탑이라는 점, 석탑을 만든 기록을 통해 탑을 세운 명확한 연대를 알 수 있어 10세기 석탑을 연대순으로 정리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 등에서 국가유산적 가치가 크다.* 기단부(基壇部): 건축물의 터를 다듬은 후 바닥에서 한 층 높게 쌓은 부분.** 탑신부(塔身部): 기단(基壇)과 상륜(相輪) 사이의 탑의 몸체 부분.*** 상륜부(相輪部): 탑의 꼭대기에 있는 원기둥 모양의..

카테고리 없음 2025.11.09

경산 신상리고분군

영남대학교박물관에 의해 경부고속도로 동대구-경주구간 확장공사에 따른 구제발굴조사의 일환으로 실시되었으며, 시굴조사결과 삼국시대 중·대형 봉토분(封土墳)이 30기 이상 분포하고, 층위(層位)를 달리하여 목관묘(木棺墓) 및 목곽묘(木槨墓),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가 수백기 이상 존재하는 유적임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위원회의 개최결과 봉토분이 확인되는 휴게소 확장부지는 최대한 보존을 원칙으로 하고, 도로가 확장되는 구간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조사는 2003년 4월 13일부터 같은 해 11월 30일까지 실시하였으며, 삼국시대 적석목곽묘와 생활유적 일부가 조사되었다.시굴조사(試掘調査) 결과 삼국시대 봉토분과 적석목곽묘보다 선행하는 목관묘 및 목곽묘도 분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 고분유적들이 계속적인 성장..

카테고리 없음 2025.11.05

경북 칠곡 신동입석

입석은 다른 말로 선돌이라고 부르는데, 고인돌과 함께 청동기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유물이다. 일반적으로 땅 위에 한 개 또는 몇 개의 큰 돌기둥을 세운 형태를 하고 있는데, 당시 부족간의 경계표시 또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기념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창평리 산103번지에 있는 이 선돌은 높이 4.5m, 밑둘레 2m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것으로는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선돌에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 새긴 것으로 보이며 선돌 자체는 훨씬 이전의 것으로 보인다. 선돌의 동쪽 주위를 개간할 때 민무늬토기, 돌그릇 등이 발견된 바 있어 청동기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카테고리 없음 2025.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