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보문단지 경주월드 맞은편의 경작지에 위치한다.
사찰에 대한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사지는 사적 제82호로 지정되어 있다.
쌍탑일그당식 가람배치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추정된다.
1938년의 발굴조사 결과 금당, 강당, 중문, 회당 등이 확인되었다.
발굴 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기와와 전돌이며, 이곳에서 발견된 치미는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쌍탑가람이나, 금당 좌우에 회랑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현각사(玄閣寺)명의 기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천군동 삼층석탑(보물 제168호)은 동.서 쌍탑으로, 무너져 있던 것을 1939년에 복원하였다. 두 탑 모두 이중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으로 규모와 수법이 같다.
기단 각 층에 2개씩의 탱주를 새겼으며,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옥개석 층급받침은 5단이며, 1939년 발굴 당시 3층 탑신에서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상륜부는 서탑에서만 일부 남아 있다. 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층 한국의 사지 경북 경주편에서)
넓은 평지에 동·서로 서 있는 쌍탑으로, 무너져 있던 것을 1939년에 복원한 것이다. 두 탑 모두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양식이며 규모와 수법이 같다.
기단은 각 층마다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는데, 가운데에는 2개씩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의 각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돌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층마다 5단이며, 처마선은 반듯하게 깎았는데 네 귀퉁이에서 약간씩 들려 있다. 3층 몸돌에서는 1939년 발굴조사를 할 때 한 면이 24㎝, 깊이가 15㎝인 사리를 두는 공간이 발견되었다. 탑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서쪽 탑에만 일부만 남아 있을 뿐 동쪽 탑은 모두 없어 졌다.
아직 통일신라 석탑의 건실함을 잃지 않은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각 부의 비례가 알맞고 전체의 형태가 장중한 석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