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동사지2는 ‘衆生寺址(중생사지)’,
‘狼山西麓寺址’(낭산서록사지)로 알려져 있다.
중생사는 『三國遺事』의 三所觀音(삼소관음) 衆生寺條(중생사조)와 栢栗寺(백률사), 天龍寺條(천룡사조) 등에서 언급되어 있다. 특히 三所觀音 衆生寺條에 의하면, 중국의 화공이 신라 중생사에 와 보살화상(大悲像)을 조성하였고, 이 상은 이후 나라 사람들의 공경과 기복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 기록에는 관음상이 신통력을 발휘하였던 고사가 수록되어 있는데, 해당 사건이 발생한 시기를 統和 10년(992), 大定 13년(1183) 등으로 기록하고 있어 고려시대까지도 중생사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의 문헌에서는 중생사의 사명이 확인되지 않는다. 본 사지가 『삼국유사』에 기록된 ‘衆生寺’인지는 밝혀진 바 없으며, 중생사의 위치와 관련된 어떠한 근거도 현재로서는 없다. 따라서 ‘衆生寺址’라는 명칭은 1970년대 이후 본 사지 내에 운영되었던 사찰이 ‘衆生寺’로 개칭한 것에서 연유한 것으로 판단된다.
본 사지는 사역 내에 전하는 많은 소재문화재를 통해 사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1917년에 발간된 『朝鮮古蹟圖譜(조선고적도보)』에는 ‘狼山石造菩薩’(낭산석조보살)이라는 명칭으로,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석조십일면관음보살상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1931년 간행된 『慶州古蹟及遺物調査書(경주고적급유물조사서)』에는 ‘낭산마애삼존상이 보고되어 있는데, 이는 1917년에 발견된 것이라 한다. 또한 1933년에 간행된 『東京通誌』에도 낭산 서록 마을 내에 마애삼존상이 존재한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昭和14年(1939) 總督官邸釋迦像(총독관저석가상)石佛座(석불좌) 調査復命書(조사복명서)」에는 사지 내에 있는 석조연화대좌의 사진과 도면이 수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배반동사지2는 일찍이 사역 내의 소재문화재를 통해 그 존재가 알려져 왔으며, 해방 이후에도 많은 학자들에 의해 조사·연구되었다. 1964, 1965년에는 정명호에 의해 사역 내의 석불입상 대좌와 마애삼존상에 대한 글이 발표되었는데, 특히 1964년의 글에는 ‘狼山西麓(낭산서록) 逸名寺址(일명사지)’라는 제목 옆에 ‘現 善德寺’라는 명칭을 부기하고 있어 조사 당시 사찰이 운영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978년 7월에는 사역 내에서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옮겨져 있는 석조보살입상의 몸체가 발견되었다. 이상과 같이 본 사지는 일제강점기 이후 다수의 석조유물이 발견되는 등 그 중요성이 꾸준히 인식되어 왔으며, 1985년의 학술조사 등을 비롯한 다수의 조사·연구에서 중요한 사지로 다루어지고 있다.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 보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