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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신라 제8대왕 아달라 이사금

간월천 2026. 1. 5. 21:30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의 장남이다. 키가 7척이며 코가 매우 커 외모가 특별하였다. 어머니 박씨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이다. 왕비 박씨 내례부인(內禮夫人)은 지마왕(祇摩王)의 딸이다.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 생몰년은 미상~184년이며, 154∼184년까지 재위한 신라 제8대 왕이다. 본명은 박아달라(朴阿達羅)로 되어있지만, 당시 성이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왕호는 이사금이다. 가족 관계를 보면 아버지는 전왕인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이며, 어머니 박씨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이라 하였다. 배우자는 내례부인(內禮夫人) 박씨이다. 내례부인은 6대 왕인 지마이사금(祗摩尼師今)의 딸로, 계보상 아달라이사금의 5촌 조카이다.
아달라이사금은 신라 상대 마지막 박씨왕으로, 그의 사후 아들이 없어 석씨가 왕위를 계승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제53대 신덕왕(神德王)이 아달라이사금의 후손으로 왕위에 올랐다고 하므로, 그 사실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ㅁ성은 박씨(朴氏). 아버지는 일성이사금이고, 어머니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로 박씨이다. 왕비는 지마이사금의 딸인 내례부인(內禮夫人) 박씨로 8촌 사이의 족내혼이었다.

이와 같은 족내혼은 박씨왕족의 힘을 규합하려는 세력연합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156년(아달라이사금 3)과 158년에는 계립령(鷄立嶺 : 지금의 문경 새재 동쪽고개)과 죽령(竹嶺 : 풍기 북쪽고개)을 각각 개통하여 소백산맥 이북까지 세력을 뻗쳤다.

167년에는 군사 2만명과 8,000명의 기병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서북쪽으로의 영토개척을 이루었다. 이러한 서북지역에 대한 영토개척을 석씨(昔氏)세력의 남하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는 미추이사금의 아버지인 구도(九道)가 파진찬(波珍飡)이 된 사실을 친석씨계(親昔氏系)의 부상으로 보는 견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재위 21년부터 31년 사망할 때까지 기록의 공백이 있어 왕실세력의 교체와 관련하여 주목을 요한다. 결국 아달라이사금은 아들이 없이 죽고 석씨왕계가 즉위하게 되었다.